본문 바로가기
지나가다

마지막, 근무 중 연휴

by 가라 2010. 7. 21.

톨스토이가 말하길, 예술가의 사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현상 가운데서 독자들이 삶에 애착을 지니게 해주는 것이란다.

더위와 수면부족으로 짜증이 극심한 가운데, 전역에 필요한 절차를 밟는 중에 받는 스트레스, 득실거리는 사람들 등으로 인내의 한계를 느끼던 중에 약속까지 미뤄져,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화를 추스르지 못하던 중에 책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이곳 생활을 하면서 참 많이 치졸해졌다. 한편으론 그동안 나는 인간이 아니기를 바라왔던 것일 수도 있다. 한계를 인정하면서 예전의 나는, 혹은 내가 추구하던 나는 상당히 변해갔다
글을 써갈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을만큼 나에게도 화가 난다는 뜻이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 화를 덜 냈다. 어지간한 일은 스스로 제어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를 보면, 한편으론 나약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의 내가 진짜 삶에서 멀어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얼마 전, 미군 사병에게 고압적으로 화를 낸 적이 있었다. 혼자 화를 삼킨 적은 몇 번 있지만 이십대에 들어와 상대에게 화를 낸 것은 기억나는 것으론 두번째였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미군들 틈에서 인정받기 힘든 카투사로서 나 스스로의 한계에 분노할 수밖에 없기도 했을 것이었다
다시 밖에 나가면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모르겠다. 변하긴 했는데,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나는 입대 전의 나와 입대 후의 나와 전역 후의 나를 느끼게 되겠지.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긴 근무시간 탓에 상당히 찌들어 있고 단순해져 있다. 한치 앞을 모를 자금 사정과 계획들을 비롯해 걱정되는 것은 또 있다. 내일부터 5일의 낮근무를 마치면 더 이상의 근무는 없다. 어제 오전 마지막 밤근무를 마치고 바라본 일출, 빛, 바람 따위를 기억한다. 아마 꿈을 꾼 것처럼 이곳을 잊게될지도 모르겠다.
완벽을 기하고 싶고 전체를 보고 싶어 결국엔 회의적이기만 했던 이십대 초반의 방황을 졸업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직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있는 것이란 마음이 있지만 의미가 있는 쪽을 택하고 싶다. 삶을 긍정하는 사명 외에도 예술가의 몇 가지 사명들이 존재하겠지만 톨스토이의 말에 지나가는 한동안의 방황들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영화 작업들이 생각난다. 어떤 결말로 글을 매듭짓고 싶지만, 아직 매듭을 지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자는 반복.

'지나가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말  (1) 2010.08.22
실감하지 못한 시간  (0) 2010.08.07
전역을 앞두고...  (0) 2010.07.19
마지막 한 달  (1) 2010.06.30
한 달  (1) 2010.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