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기

집을 나온지 3일이 되었다
찌질하고 별 일 아닌 일로 싸운 것인지라 지금은 벌써 잊혀지기도 하고
안락한 곳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생활이 인생에서 뭔가의 의미를 지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래 놓고 밤에 당장 돌아갈 지도 모르지만 지금 마음은 그렇다

새벽 두시가 넘어 부슬거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나선 길은 이상하게 희망적이고 날 두근거리게 했다
극회실에서는 모기를 잡을 때까지 잠을 못 자다가 앞날을 생각해 보고 그러다 늦게야 잠에 들었다
약속들이 있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피곤할 땐 졸기도 했다
발길을 한동안 끊었던 극회 연습 현장에 들렀다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의 감정을 건들이고 술자리도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잘 모르던 후배도 조금쯤 알게 되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공감의 말을 전해주고
집 방향이 같은 후배와 길을 걷다가 헤어진 후 잠깐 멈췄다가 집이 아닌 성북구 경찰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벽의 밤 거리는 조금 더 어린 시절에 배회하던 그 새벽의 잠든 밤 거리와 같았다
그때의 마음들이 돌아오는 것 같아 이상스레 흥분되었다
낯선 찜질방에 몸을 뉘일 때 혼자 하던 여행들이 떠올랐고
다음 달 초까진 희곡 한 편을 쓰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굳힌다

오늘은 시험을 보았는데 잘 한 건진 모르겠다
잠도 덜 깼었다
하지만 낯선 공간을 거니는 것이 자꾸만 신이 나서 집에 늦게 돌아갈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가 있다
오늘은 신촌을 갈까
당분간 짱박혀 있다가 인터넷 다운로드 계정 만료되기 전에 집에 가서 외장 하드 들고 나오고
신촌이든 수원이든지에 피신해 있어야지
돈이 없다는 게 큰 문젠데
어디든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우하하 백수된 이래 젤 신나는구나
집 나와서 위염 낫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