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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주절4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 - 로이 안데르손 크리스마스에 연인과 함께 볼 영화인가? 우리는 연인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크리스마스에 퐁네프의 연인을 본 적도 있다. 이 정도는 유쾌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고정된 카메라로 화면의 특정 영역을 강조하지 않고 연극적으로 장면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극사실주의에 가까우면서 장면간 전환도 금세 해치울 환경이 되지 않는 이상 저렇게 침묵한 채로 영화의 사실적인 장면에서 쉽게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할 수 없다) 두 명의 주인공이 시대를 넘나들며 스웨덴의 인간 군상을 스쳐 지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로 시작하지만 차차 고민을 남기는 장면들로 이어진다. 스웨덴의 마지막 전제군주 칼12세와 볼리덴 사(社)에 대한 비판적 장면들에서는 웃음이 계속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 2018. 12. 25.
사람아 아, 사람아! - 다이 호우잉 한중 수교의 기운이 넘쳐 흐르던 때에, 출소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영복 선생이 번역하여 출간한 다이 호우잉의 소설이다이 책은 본래 공연을 마친 솔범이 아버지께 누군가가 선물한 책으로, 대학에 입학한 솔범이가 읽겠다고 가지고 있던 것을, 솔범이가 입대할 때즈음 솔범이 집을 방문한 내가 책장에 꽂힌 책들을 몇 권 챙겨오며 내 책장에 놓게 된 것인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앞부분만 잠깐 보다 만 채로 돌려주지도 않고 있던 것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소비에트, 중국, 북한 등지에서의 시회주의 리얼리즘의 변천 과정을 파악하지 않고는 이 소설의 의미를 온당히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가 전면에서 쉼없이 등장한다는 게 다른 문화권과 맥락에서라면 다소 맥없이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2018. 12. 25.
15번 진짜 안 와 - 박상 (스포일러) 상략 고남일은 그럭저럭 유쾌하게 살던 사람이었다. 돈도 안 되고 유명하지도 않지만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었으며 배달 아르바이트로 적당히 버는 생활비는 아쉬울 것 없었고, 사이좋은 애인도 있었고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는 게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야말로 되는 일 없는 놈의 견본이 되기 딱 적절한 일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겪었다. '되는 일이 없다'는 표현은 남들에겐 빈번하지 않은 비운의 확률이 자신에게만 집중적으로 발생할 때 쓰는 용어다. 주위의 모두가 연애를 하고 있는데 자신은 연애를 못 하고 있을 때, 아무도 치질에 걸리지 않았는데 자신만 똥구멍에 개떡 같은 게 생겼을 때, 하필이면 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린 순간 폭우가 와서 씨팔 쫄딱 젖을 때, 여유의 극한을 때릴.. 2011. 10. 11.
대학일기 - 김한길 상략 축제 시즌에는 데모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꽃다운 젊음에 스스로 축배를 들기만으로 충분히 바쁜 까닭에 축제를 앞두고는 미팅이 성행하지. 우린 공돌이 공순이가 아니니까. 대학생에겐 낭만이 있어야 하니까라면서, 제비뽑기에서 걸린 파트너 앞에 앉아 발정기의 동물들처럼 수작을 벌였다. 진실한 사랑이고 개뿔이고 간에 우리는 좀 더 아슬아슬한 연애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개강이며 종강 파티, 야유회, 봄·가을엔 야구장엘 몰려갔고, 경기가 없을 때면 우리끼리 체육 대회를 가졌지만 교수들은 용케도 그 틈틈이에 시간을 잡아 끈기 있게 강의를 진행하였다. 빈틈없이 평가를 해서 귀신처럼 학점을 매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야망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하라고 가르쳐주셨다. 나는 다 싱거워져서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 2010.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