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산지 10년째이다. 오늘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00년 어버이날에 이어 10년 만에 처음으로 어버이날에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간 편지나 전화만으로 어버이날을 보내다 보니 막상 꽃은 버린다고 아까우니 사지 말라시는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게 되었다. 겨우 동생들과 저녁값을 낸 것이 다였는데, 가족은 참 말이 없다. 건드릴 수 없는 부분은 서로 건드리지 않다보니 그런 것이겠지. 3일을 있는 동안 앞날에 대해서는 '복학할 것이냐', '안 할 것이다'의 대화가 딱 두번 짧게 있었을 따름이다. 10년 전에 나는 가정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제는 대구에서 처음으로(아주 어릴 때 본 아동극을 빼고, 어린 시절 시내의 동아쇼핑에서 피터팬을 봤었는데 여자가 피터팬을 하고 있어서 이상하게 여긴 기억이 난다. 이 생각은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 떠오른다. 내가 연극을 하고 있을 줄이야) 연극을 보았다. 상연 중인 것이 별로 없는 중에 나름 대학로에도 진출했던 팀을 골라, 썩 취향에 맞지는 않아 서울에서였다면 안 볼 것인데도 궁금해서 보기로 했다. 그저께도 보려고 했으나 무려 26년만에 공연장을 못 찾아 공연을 못 보는 불상사가 있었는데, 그저께는 7개월간 써온 메모장도 잃어버리고 굉장히 불운했다. 해서 이제는 대학생이 된 여동생과 공연을 보러 갔는데, 환경의 차이가 이렇게 큰가하는 서글픔이 있었다. 나름 극장도 가지고 있고, 대구의 연극계에서는 알아줄 법한 팀이 아닐까 했는데, 연기의 기본기는 서울과 비교해 그리 다를 게 없었으나(사투리 억양이 중간중간 튀어 나오는 것은 대구니까 튀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그러는 배우들이 종종 있으니) 조명 사용이나 연출자 및 배우의 공간 이해와 활용이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그 많은 조명으로 전체 조명을 쏘는데 극회 공연에서나 볼 법한 조명 활용으로 밝아야 할 무대에 그림자가 생기고 얼굴이 밝게 비추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또한 배우들은 공간을 마음껏 누비지 못했는데 대체로 연출가의 역량에서 한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영화 극장만 가 본 관객들이 음식을 안에서 먹으려고 하던 것이나 진행자가 관객에게 제발 부디 공연 중에 나가지 말아달라고 몇 차례씩 반복하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이 배우들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문극단과 직장인극단 사이의 공연 수준이 안타까웠다. 서울의 많은 극단과 함께 하는 환경에서라면 이들은 더 잘 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국내를 떠나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안타깝게도 한 번 더 하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아쇼핑을 지나쳤다. 차를 타고 지나친 적은 많았지만 골목을 지나긴 어린 시절 후 처음이었다. 어릴 때 주말에 차타고 가족끼리 와서는 이 골목을 누비던 게 기억이 났는데, 늘 집 주위만 배회했었지 이런 옛 생각은 도대체 해 본 적이 없더니, 내 인생은 참으로 많이 바뀌어 왔구나 하는 묘한 마음이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나 분명 가정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해서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듣는 마음이 신기하다. 나는 항상 집을 떠나려 했다. 언젠가는 나도 안식을 찾고 싶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는 더욱 헤매도 좋다
통 TV를 볼 일이 없는 나로서는 집에 오면 TV를 보며 쉬는 시간이 여유가 있어 좋다. 어젯밤엔 MBC 스페셜의 특집이 있어 궁금했던 몇 가지 방송을 보며 영화나 연극, 문학 따위의 것과 다른 진짜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오키나와 전투에 대한 미국 방송의 수입버전, KBS의 김해성 목사의 강연 따위가 흥미로웠다. 이주민과 교포 문제에 관심이 많고 몸으로 많은 것을 증명해내려고 하는 김 목사의 행적과 확고한 목소리가 감동적이었다. 義자를 '양을 들고 있는 나'라고 설명하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 시대의 합창은 어떻게 어우러진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우선 양의 아래로 내려가려 해야할까
나의 앞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이것이 옳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2년의 공백은 생각보다 커서 직접 다시 부딪쳐보기 전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갑갑하다. 하지만 표현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 이 에너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더 든다. 아직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는 기대만 품게 하는 어설픈 재능은 신의 저주라고 했다. 두고 보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