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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한 달

by 가라 2010. 6. 24.

다음달 스케줄을 연구 중이던 할랜 병장이 "김 병장 전역 언제심?" 이라고 물어 "담달 말일이 말년 휴가고 그 전 3일은 한국군 전역교육 있음"으로 대답하였다. 이제 스케줄 상에서 빠지기까지 한 달이 남았다. 지나온 세월이 지나가며 감개 무량한 마음으로 밤 근무를 마치고 김 일병과 탁 일병 및 갓 들어온 권 이병에게 인사를 한 후 막사에 돌아왔더니 내일 전역하는 최 민간인이 한국군복을 입고 전역식 예행 연습에 가려고 긴 머리를 부스스 일으키며 깨어났다. 심지어 짐까지 다 싸서 방을 빼는 중이었는데, 한 달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이번 달은 파견 소대인 우리 소대가 훈련에 돌입하면서 새로 파견 나온 1소대에 순찰 감독을 맡을 부사관급 인력이 모자라 나 혼자 다시 파견 나온 형국으로(또 다시 무관심 병사), 아는 사람이 딱히 없어 지난 한 달은 새로운 인물들에 적응하면서 보냈다. 그동안 만만한 한국군 병장 순찰 감독에 대한 묘한 무시에 대해 익히 느껴왔기에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며 빡세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달을 보내온 덕에 몹시 피곤하다. 1소대 순찰 감독들이 내가 아니었으면 두 달 반 동안 휴일 없이 일할 처지였던 고로 내 스케줄은 4일 일하고 이틀 쉬는 것으로 안정되게 만들어 준 덕에 외출도 잦았는데 그동안 운전대 잡고(안 놓아주고) 드라이브하는 거에 맛들려서 근무를 도리어 즐기며 잘 보내다가, 이번 복귀 때는 말년 휴가 다녀온 최 민간인의 하루하루를 보며 재입대하는 기분을 느꼈고 근무하기 싫다는 생각이 오랜만에 또 들기 시작하였다

어쨌건 저쨌건 한 달이다. 이미 스케줄들을 잡아가고 있는 플래너가 복잡해지고 있고, 밖에 있으면 큰 관심 없을 월드컵 축구(특히 다른 그룹 경기) 덕분에 근무는 더 널널한 기분이다 (그리스전 때는 주말이어서 경기에 이겨도 사건이 생길까봐 근무 내내 노심초사하기는 했다, 이번 토요일에 60달러 줄 테니까 근무 해달라고 한 하일릭 상병 말 안 들어주길 잘한 듯 - 예전엔 저 돈이면 거절할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하루라도 덜 일하고 싶어지니 원) 해서 잘 해보자인데, 글을 하도 못 쓰고 있어서 그간 느껴온 것 좀 써보자는 생각과는 달리 찌글찌글한 어제 오늘의 감상만 남는군. 어서 이 짓을 관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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