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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마지막 수업

by 가라 2011. 6. 10.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장마가 온다는데 글쎄
연극 준비로 현대소설론 못 읽었던 소설이 많다
열람실에서 읽다가 잠들었다
학복위 토플을 신청했다
수업을 듣고
마지막 수업을 듣고
듣기 전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학부 시절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선생님과의 식사 자리에 꼈다
2004년의 캠퍼스가 잠깐 아른거렸는데
처음 들었던 수업이 뭐였더라
잘 모르겠다
그때 마음도 잘 모르겠다
6월 10일이라니
후배들이 그득한 자리
분위기는 이상했다
딱히 할 말도 없었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
내가 굳이 이들 앞에서 떠들어야 했을까
몇 다리 걸친 인연들을 확인하며 놀라워 하고
다시 만나도 이름 기억도 못할 인연들은 그대로 흩어졌다
열람실 자리가 튕겨져 있었다
연장 시간을 잘못 알았던 것이다
책을 읽기만 하면 되는데
잠깐 1분 새에 튕겨져 있었다
하릴없이 집으로 걸어왔는데
곧장 동생이 들이닥치고
졸음이 쏟아졌다
집회에 갈 생각은 이미 떠나 있었다
그러나 잠깐의 잠을 자고 나니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가지 않고 집에 있다간 계속 그것에 대한 생각이 아른거릴 것 같았다
거기다 쓸데없이 야구 경과나 들락날락하며 지켜볼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탔고
광화문에 내렸고
굉장히 평화로이 종로를 거닐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3년 전의 그 느낌은 다시는 찾지 못하겠지
더 이상 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해 여름의 그 거리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는 자꾸 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 풀리지 않는 앞날도
다 그때 일들과 겹쳐지는 것 같다
8년 전 겨울 우리는 우리들의 옛살라비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나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돌아와보니 경찰 추산 5000명, 주최측 추산 10000명의 대집회였다
왜 현장에선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까
우리의 마음이 늙어버린 탓이다
그때의 희망은 1명을 10000명으로 셀 수 있게 했다
무거운 마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오전에 토플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내 앞날이 그리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근본부터 나를 뒤집어 놓는 알 수 없는 울렁거림
좀 걷고 싶었다
옛노래를 들었다
더 답답했다
외국의 라디오를 연결했다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감성
소리라도 질렀으면 풀렸을까
춤이라도 췄어야 했을까
어디도 지르지 못할 괴성에 몸 속을 꿈틀거리고 있는데
버스는 아무렇지 않게 종로를 지나가고
사람들은 평화롭고
나는 너무 많이 살이 빠진 상태
자칫 이대로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싶은 심각함
마음껏 먹을 수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먹고 싶은 것도 먹지 못하는 답답함
노래를 부르고 갈까 하다가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집으로 흘러든다
야구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다
그게 다였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수업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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