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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방황

by 가라 2011. 6. 25.

지난 3년간 나는 해야할 일들만 하고 살았다
군복무 시간은 물론 학점 세탁에 올인했던 가을 학기, 휴식에 집착했던 겨울, 연출을 했던 봄 학기 모두 책임감을 기반으로 움직여왔다
그래서 난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입대 직전까지 나는 어떤 좌절과 우울에도 내가 참 복이 많고 행복에 겨운 놈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난 왜 불행해졌을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서
가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일정 부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지난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 왔고, 그래서 행복했던 게 더 특이할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짓누르는 이 압박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모르겠다, 단순히 장남이라서, 꿈과 그외의 것을 함께 쫓아서?
한동안 여가 생활 없이 지냈다
텍스트는 수업과 과제, 혹은 연극과 관련한 것만 읽어댔고, 과제나 써야할 것 외의 잡글은 잘 쓰지도 않았다
음악도 찾아 듣질 않았고, 기타는 치지 않아 손이 굳었다, 심지어 기타가 완전히 망가져 칠 수도 없게 됐다
숨돌리기용 짧은 산책, 인터넷 서핑 외엔 늘 의무처럼 뭔가를 해왔다. 연극을 보는 것도 공부와 같았다
좋아서 하던 모든 일들이 책임감의 탈을 쓰면서 불행한 업무로 변했다
쓸데없이 인터넷 기사나 들락거리다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다 멍청하게 안내실에 앉아 티비만 보다가 하루가 흘렀다
결국엔 잠도 자지 못하고 심심해했다
며칠간 영화도 보고 글쓰고 싶은 감상에도 젖기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쓰려니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았다
멍청하게 가만히 앉아만 있게 된다
이 무력감은 무엇일까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안내실 아르바이트는 늘 스트레스 받을 일이 한두개씩 생기고, 나는 어떤 정신도 없이 해야할 기본 중에 기본적인 것만 해놓고 아무런 의식을 갖지 않는다
다음 주부터는 영어공부와 한국어교육능력시험 강의 듣기의 여름 스케줄에 들어가는데
빈 시간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람들을 만나 의미없는 대화를 하는 데에는 신물이 났다
그럼에도 가끔씩 짧게짧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긴 하겠지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남은 시간은 허망하게 버려진다
연말까지는 대학원 쪽을 알아볼 것이고 그를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 이후는?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다 놓쳐 버린 게 아닐까
이젠 정말 아무래도 좋은 정도로 무기력해진 느낌도 있다

쿨하게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는 건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
꿈의 의미에 이토록 회의적인 건
결국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일 것

다시금 꿈을 꿔야 한다
이 미칠듯한 쇼 비지니스와 인간 관계의 고리 속에도
내가 정말 원했던 것, 바랐던 것
그걸 찾아야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일들을
다시 사랑하고 싶다
그 순간순간에 행복과 희열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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