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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반환점

by 가라 2012. 7. 2.

2012년의 반환점을 돌았다

앞일이 어찌 될지 몰랐던 연초에서 여행을 떠났던 설 연휴 직전, 왕인에 관한 사극을 준비하던 2월까지의 시간, 극단 입단, 연극, 연극, 연극...

잠깐의 숨돌릴 틈이 주어졌다

이 정도로 잠깐일 줄은 몰랐지만



6월 30일


간밤엔 브라질리아 쫑파티로 거나하게 취했다

많이 잤으면서도 피곤해서 오래도록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일어나서 극장으로 향했다

무대 철수 현장

몇 마디 나누었던 상명대학원 학생들과는 더 짧은 몇 마디만 나누었다

이미 챙겨둔 소품을 옮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콜밴을 타고 노량진으로 가는 길은 엄청나게 여유로웠다

극단 사무실과 창고 여기저기로 물품들을 배치하고 나서 진행비 사용내역을 정리하고 나니 나른함이 밀려 왔다

이미 내가 봤던 연극을 보러 가는 두 동기와 달리 나는 약속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누워서 빈둥거렸지만

전시를 여유있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둘보다 먼저 일어섰다


알 수 없는 여유라니. 그동안 너무 달려왔다. 쉼 없는 네 달이었다

시청에서 버스를 내려 덕수궁 미술관을 향하는데 시청 앞 광장에선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사노라면을 참 전인권처럼 부르는 사람이어서 신기해 하는데 후렴구를 부르는 저 목소리는 틀림없는 전인권이다 싶어서 멀리 바라본 전광판에는 들국화의 리허설 장면이 잡혔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MBC 파업을 지지하는 콘서트가 저녁에 있을 거라고 했다

이은주 사망 후 전인권이 활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2004년에 학교 축제에서 그를 보았고, 14년 만에 컴백하는 들국화를 코앞에서 보고 있었다

저 현장이 궁금했지만 우선은 전시를 보자 싶었다


이인성 기념전과 꿈과 시라는 한국근대미술 전시였다

이인성은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였는데, 그의 삶이나 그림이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시대의 흔적들이 새삼스럽긴 하였으나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 더 큰 그 그림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따

그런데 꿈과 시 전시에서는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림들이 있었으니, 이래서 그림은 미술관에서 진본을 봐야 하는구나 싶었다

가장 먼저 감응이 일었던 작가는 구본응이었다

이상을 그린 그의 그림은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보는 칼라는 달랐다. 특히나 눈 주변의 강렬하고 빠른 붉은 색의 터치는 우울한 시대에도 멋을 잃지 않은 그들의 자신감을 읽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검지 않은 빨강일 줄이야

그의 다른 그림들에서도 이인성을 포함한 다른 작가들의 그림처럼 한국식의 근대미술을 일구려는 노력들이 읽혔다. 국문학에서야 그 시대의 그런 시도들에 대해 익히 알았지만 미술에 관해서는 처음 아는 것들이었다

다음 나를 멈추게 한 작가는 박수근이었다

그동안 박수근의 작품이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실제 만나는 작품의 미학은 사진으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해 보였던 그림의 실제 크기에도 놀랐지만 그 큰 캔버스에 수많은 덧칠을 해 두꺼워진 유화 물감의 두께에 압도당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실이 있다는 그의 말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 것이다. 저 평범한 인간들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몇 번을 그렸다 덧칠했다 했을까. 촘촘하게 변화하는 색도 사진에서 보던 단순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환기의 작품에서도 박수근의 경우에서처럼 물감의 두께에 놀라움을 느꼈다. 단순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추상적인 그의 그림이 따뜻하게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그림에 대해선 여전히 모르지만, 화가들의 고민과 시도들을 조금씩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근대의 풍경, 화가들 다수는 역시 돈이 많고 유학도 갔다 올 만한 사람이긴 했지만,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 새삼 생각케 되었다


배고품을 참으며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니 어느새 해는 졌다. 본격적인 노랫소리가 시청 앞 광장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가까운 국수집에서 끼니를 때웠다

시청 앞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채워져 있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사람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집회 현장이나, 문화 콘서트를 빙자한 풍경보다도 훨씬 얌전했다

아고라와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 정도를 빼면 깃발도 그리 눈에 띄지 않았고

그럼에도 그것은 파업을 지지하는 콘서트였다

대중 가수들이 감히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이 정도로 MBC 노조 측의 입장이 여론과 가깝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불확실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저 무대에서 개런티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 존 레논과 밥 딜런과 빅토르 하라 등이 지나쳤다

방송에서 프로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영상을 만들고 무대를 연출하고 코너를 짜고 진행을 하는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다. 신선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저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서 씁쓸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이 저 자리에 있는 것도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지금껏 서울시장은 이명박 오세훈밖에 못 봤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박완규, 이은미, DJ DOC, 뜨거운감자에 이어 들국화가 나왔다

두세 곡 부르고 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곡을 불렀다. 오랜만의 컴백 무대에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전율을 주는 그들의 노래 운영은 제법 강했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느낌이구나 싶으면서도 그들을 추앙하게 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존재가 어딘가 웃기다 싶긴 했다

전두환 때보다 더 많은 공영방송사 직원들이 해고당한 상황에서

무한도전 좀 보자는 순진한 구호와 함께 부드러운, 비교적 엘리트 노동자들의 문화 콘서트 자리를 나왔다

노래를 좀 불렀고

빈둥빈둥 어쩌나저쩌나 하다가 잠에 들었다




7월 1일


자도자도 잠이 오고

하려던 것들을 많이 못 하게 되고

결국 어기적어기적 태형 선배 집들이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여유로운 풍경

태형 선배의 여자친구도 자리에 함께 했다

닭살 커플들보다 나는 저렇게 편하게 있는 연인들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술을 마시고 마시고

모처럼 많난 동기들과도 반가웠지만

그대로 헤어지면 앞날은 조금 불투명하기도 하다

엠티 때 보자고 하며 한성대를 떠났다

은선이와도 쉬는 동안 좀 만나거나 하자고 하며 헤어졌다

이젠 7월이 어떻게 되는 걸까

글을 한 편 써야지

하고 있었는데 대표께서 앞으로의 일정과 관련한 연락을 보내왔다

7월말의 밀양연극제에 참여하게 되어 사실상 이번주가 마지막 휴식이 될 듯하다

12월까지 쭉 달리는 일만 남겠다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조건 쓴다고 생각하고 구상에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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