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시절의 기억은 야인 비슷하게 여기저기서 활동하다 입대했던 2008년을 제외하면, 4학년으로 진학했고 마지막으로 학교 수업을 듣던 2007년 정도에 멈춰 있다. 대학에서 이룰 건 다 이루었다. 교양과목 두 과목 정도가 남았지만 전공 수업도 이미 다 들은지 오래고, 졸업앨범까지 찍었다. 동아리에선 연출로도 두 차례 추대되었고, 가끔은 외롭고 힘들 때도 없지 않던 낭만적인 긴 시간은 입대 전까지 달리면서 그렇게 거의 끝이 났다. 끝내려면 완전히 끝낼 수도 있던 걸 만약을 대비해 유예시켜 놓았던 것 뿐인데, 나는 그동안 전혀 자라지 않았다
대학시절 마지막까지 함께 수업을 들으며 공부하던 여자 동기들은 대학원에 진학한 몇몇과(심지어 석사 학위마저 이미 수여받은 일부도 있다) 극소수 몇몇을 빼면 더 이상 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까지는 불투명한 미래에 답답해하고 심란하기만 하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제법 되었지만 이제는 나와는 확연히 다른 선상에서 저마다의 분투를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7년에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은 어느새 나와 같은 4학년이 되었고, 남자 동기들 역시 나보다 빨리 졸업하거나 나처럼 졸업을 약간 미룬 채 미래를 위해 쉼없이 노력하는 위치에 올라있다. 그 사이의 공백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는 감이 잡히질 않는다. 대학은 그저 내가 기억하던 대학처럼 몇 년을 또 지나왔고, 떠나는 사람의 자리엔 새로운 사람이 채워지는 통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켜보다보니, 나는 2007년의 모습으로 2010년의 대학에 서 있는 것이었다. 빡빡한 이곳 생활을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2~3년 전의 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남자는 누구나 군대를 가는 한국 땅에서 내 나이라면 대학 생활이 한 학기 남은 것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되면 조금 문제가 되어도, 당장 얼마간은 그리 느리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여전히 바깥으로 진출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 2~3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했다는 것이 나를 몹시 불안하고 답답해하게 만든다. 군대를 늦게 간 나는 입대 전까지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후회는 없이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지향하던 점을 찍거나 그 근처로 가기는커녕, 비슷한 처지에 있는 셀수없는 사람들 속에 눈에 띄지도 않는 초라한 예비역 군인이 되어가는 것뿐인 것이다. 앞서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유가, 쫓아오거나 앞질러간 사람들 사이에서 전혀 나아가지 못한 채 불안하게 서 있을 뿐인 것. 극회 술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군대 이야기를 빼면 예전 활동시의 무용담 같잖은 허세 이야기 뿐이다. 그때의 나는 비슷한 연배들 사이에서 눈꼽만치는 앞서 있었으니까,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2~3년 전의 내가 생각한 오늘의 내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나는 한치도 성장하지 않고 도리어 퇴보했고, 세상은 무섭게 변해 있다
정말 내가 생각한 길대로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불안함이 없지 않다. 이 길을 버리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을 떨치려고 아예 세상 모르고 젊음을 탕진하는 태도로 돌아설 수도 없다. 늘 바빴듯이 전역하기도 전인 지금도 이미 바빠지고 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는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차근하게 해나가보자. 세상에서 나는 그저 그런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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