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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다시 서울에서

by 가라 2010. 9. 23.

지난 5월 초 휴가 나와서 집에 간 후 4개월 여만에 대구에 내려갔다
명절 때 할머니댁에 간 건 2년 전 추석 이후 처음이었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오랜만이었고 나의 처지는 어딘지 바뀌어 있었는데
여전히 많은 것들이 익숙했다
고향은 정지해 있는 것 같다
내가 집을 떠나 살기 시작해서야 처음 이사온 지금 집에서 산지는 10년이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예전에 가족들과 그러했듯이 계속 떠돌아다니고 있다
차례를 할머니댁에서 지낸 건 2년 만이었고 청도에 성묘 드리고 친척 어른들을 방문하는 것 역시 2년만이었다
그런데도 참 많은 게 익숙했다. 그저 내가 나이를 조금 먹었을 뿐이었다
몇 달만에 만난 창원이는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몇몇 친구들의 소식들엔 잘 되었다는 생각들도 든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마침 몸이 안 좋아 잘 먹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는 내내 환자 취급 받은 게 부모님께 특히 죄송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건 좋지 않아 긴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싶은 생각들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2년 전에 찍은 졸업 앨범을 꺼내 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제법 된다. 문제는 이들은 이미 없다는 것. 나만 남아 배회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많은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음에도 드는 묘한 박탈감 같은 것도 있다. 그러나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많다, 그 이후가 걱정이지
가지고 올라올 짐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남긴 기록들을 본다
뜨겁게 준비하던 것들을 보니 내 마음도 뜨거워진다. 뜨겁게 살아본 이유 탓에 그걸 잊지 못해 방황하는 거겠지. 차라리 그런 기억이 없더라면 평범한 행로에도 아쉽지 않았을까
올라가지 못했던 공연의 답답함을 보기도 하고 의외로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들을 보기도 한다
난 분명 할 수 있겠지
지금은 준비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 위해 희생할 것들이 꽤나 많다는 걸 실감한다
부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더 복잡하게는 생각하지 말고 수업들과 대학원만 생각해야지
내일부터 있을 서울연극올림픽에서 이 작품 저 작품들을 봐야겠다. 정말 나를 떨리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나를 다시금 생각해봐야지
다시 서울에 왔을 땐 날씨가 참 좋았다. 어디든 가고 싶은 날씨였다. 예전 같았으면 들뜬 마음에 어디든 가고 싶었을 것이다. 어디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딜 가도 대단찮다는 걸 안다. 그저 캠퍼스나 둘러봐도 좋을 걸 안다. 또, 예전엔 집을 떠나 사는 게 마냥 좋고 신났다. 지금은 집을 떠났다는 느낌이 약간은 부친다.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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