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백제니 임나일본부니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를 들여다보자니 역사 연구에는 얼마나 많은 판타지가 섞여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미래에도 희망을 품지만 과거에도 희망을 품는다
역사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위한 서사의 발단과 전개에 해당한다
절정에 달한 현재 혹은 절정을 향해 가는 현재를 만들어주기 위한 초석인 것이다
동아시아 삼국이 일본 고분문화나 칠지도, 광개토왕비문을 해석하는 모습들을 보자니 이런 상황이 상상된다
3000년 후, 2000년대(편의상 '모세'라고 하자)의 아시아를 연구하던 사학자가 폐기된 줄 알았던 아시아 지역 페이스북 DB 중에 유일하게 나의 프로필과 내가 2012년에 남긴
어게인 2004
라는 상태 업데이트를 복원한다
그 학자는 "'어게인'은 모세영어 'again'의 차자표기로 졸업 후 사회 진출을 앞둔 글쓴이가 대학 신입생일 때의 마음을 되새기기 위해 쓴 것이며 영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모세 초기 강력한 힘으로 세계 경제를 쥐고 있던 미국에 대한 글쓴이의 사대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에 대해 나의 출신대학이 고려대임에 주목한 어느 학자가 "'고려대'의 '고려'란 '고려연방제'를 뜻하는 것으로 고려대는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주의자가 세운 학교다. 때문에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한총련계 학생이 남북 공동입장에 실패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전철을 밟지 말고 공동입장을 했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정신을 떠올리자는 글을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자 또 다른 학자는 "'고려대'를 세운 '김성수'가 말하는 '민족'은 1980년대 이후 종북적인 '민족주의'와 시대가 맞지 않고 한총련은 2012년 이전에 세력을 잃었으므로 이는 명백한 오류"라고 비난하며 "'고려'는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에 흩어져 있던 옛 조선 유민들의 호칭인 '고려인'과 관계가 있고 당시 '고려대'가 주창한 'Global KU'라는 표어에서 보듯이 '고려대'는 점차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었으며 글쓴이의 이름이 한국어 '김건우'가 아닌 영어 'GunWoo Kim'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글쓴이가 '한국계 미국인' 혹은 '한국계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그것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아니라 단순히 한국어가 서툴러서 영어 차자표기로 고향에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글을 남긴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때부터 나는 한국인이었다가 미국인이었다가 탈북자였다가 고려인이었다가 조선족이었다가 한다
그런데 싸이월드 DB를 연구하던 어느 학자가 고려대학교 앞에 '어게인'이란 식당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는 "한국에서 8년이나 대학을 다닌 외국인이 한국어가 서툴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GunWoo Kim'의 국적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어게인'이라는 식당에 자주 출입하였으며 갑자기 피어난 그리움으로 식당이 사라진 2004년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그때부터 어게인이 학교 앞에 있었던 시기와 그 위치, 식당의 메뉴와 디저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다
그 와중에 "연구자들이 모두 상태 업데이트의 '2004'를 연도로 해석하는 데 'GunWoo Kim' 연구의 가장 큰 잘못이 있다"라고 하며 "2004는 연도가 아니라 당시에 있던 총점 5000점의 대기업 입사 시험에서 받은 점수를 의미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2004점밖에 얻지 못했음을 통탄하는 글"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생겨나는데,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500점 만점의 대학입학시험은 있었으나 5000점 만점의 시험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GunWoo Kim'이 대학을 늦게 졸업한 것만은 분명하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획일화된 'GunWoo Kim' 연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존재했던 만점 2004점 이상의 시험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라는 박사 논문을 그의 제자가 쓴다
이쯤해서 모세영어 전문가가 "모세영어 'again'의 당시 한국어 차자표기는 '아가인'인 것이 현재의 정설로 되어 있으며 '어게인'으로 쓴 것은 이보다 500년 후인 허세영어가 되어서야 나타난다. 때문에 '어게인'은 순우리말 이름 '어게인' 혹은 한자를 쓴 '어계인'이라는 사람 이름인 것이 확실하다"라고 들고 일어서자 당시의 키보드를 연구하던 학자가 키보드에서 'Shift키'를 사용하는 것의 번거로움을 지적하며 "'어게인'은 당시 한국인의 이름 중 하나인 '계인'을 'Shift키' 오용으로 잘못 표기한 것"임을 선언하게 되니, 그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인가 연인인가 사촌인가 어머닌가 돈 떼먹고 튄 놈인가 배우 이계인의 오기인가, 갑론을박 티격태격하다가, 새로운 지구연합의 사무총장으로 트랜스젠더가 40년 연임하는 동안, "'계인'과 '건우'는 모두 모세한국의 남자 이름으로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다가 '계인'이라는 사람이 2004년에 성전환수술을 받고 2012년에야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바꾼 후 주민등록 개정까지 마쳤다. 둘은 2012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는 결론이 났다고 하자
그리고 아시아주의 보물로 지정된 나의 프로필과 상태 업데이트를 비롯한 상당수 관련 논문자료를 웬 호모포비아 반체제 아저씨가 복원도 못하게 첨단 기술로 포맷시킨 후 체포되면서, 1000년쯤 후에는 자료부족과 횡행하는 음모론 탓에 GunWoo Kim과 모세한국에 대한 억측과 과장은 심해져 GunWoo Kim은 동성애자였다가 양성애자였다가 트랜스젠더였다가 다양한 성을 인정한 모세한국의 새로운 지도자 혹은 영웅이라고 믿는 음모론자 혹은 성적소수자(그때는 단일 성을 평생 유지하는 게 소수자일지도 모르지) 집단도 생겨난다
이쯤 되면 역사적 '사실' 따위는 전혀 아무 짝에도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알 수도 없다. 역사 왜곡은 언제나 나도 모르게 조금씩은 다 하고 있다. 역사를 과거에 던져놓고 나몰라라 할 것이 아닌 이상 그것을 밝혀내는 과정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 현재의 우리의 자세가 어떠냐하는 것이 더 중요할 뿐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말 또한 우스운 이야기 아닌가. 내가 했던 일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로 해석될 것인데. 우리가 지금은 역적으로 알고 있는 자가 후세엔 위인으로 칭송받고 영웅으로 알던 자가 친일파 같은 사기꾼으로 기억될지 어찌 알겠는가. 다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오늘에 떳떳하게 후회 없이 헤쳐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