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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가을 저녁

by 가라 2009. 10. 1.

 10월이고 가을이다. 꽤 많은 이야기들이 머릿 속을 맴돌고 있었고, 쓰려면 쓸 것들도 얼마든지 있으나 피곤한 몸이 문제다. 잠깐만 쉬었다 하자고 시간을 보낸 후에, 글을 쓰려던 마음과 감정의 준비가 마련된 후엔, 다음 날 근무를 생각해 잠을 자지 않을 수 없다. 쉬는 날엔 갑갑해서 밖을 싸돌아다니게 되고 밤이 되면 역시 자야할 수 밖에 없다. 근 8개월째 반복되는 생활이다. 긴 밤을 사랑하던 나에게 규칙적인 생활은 어째 안 어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새 10월이다.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肺壁)에 그을음이 앉는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실어 내가기도 하고 실어 들여오기도 하다가 잊어 버리고 새벽이 된다. 폐에도 아침이 켜진다. 밤 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나 살펴본다. 습관이 도로 와 있다. 다만 내 치사(侈奢)한 책이 여러 장 찢겼다. 초췌한 결론 위에 아침 햇살이 자세히 적힌다. 영원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이상, 아침 전문

 되새김의 끝엔 무상만이 남는다. 백석의 시처럼 외로움이 남는 것도 아니고, 멍하다. 어제는 병철이와 통화하면서 '작은 재능은 신의 가장 큰 저주'라는 이야길 들었다. 더욱 멍한 마음이었다. 요 며칠 기타를 뚱땅거렸다. 나에게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기타만 치고 좋은 음악만 들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다른 어떤 예술보다 이성에 대한 배제가 큰 감성의 회오리인 음악만 하면서, 불같은 사랑만 하다가 갈 것이다. 그렇게 도망가고 싶은 것일 테다. 최근엔 단어를 찾기가 힘들다.

 일년 간의 비슷한 생활 동안 가장 갑갑한 것은 듣고 싶은 음악을 듣기가 쉽지 않다는 것인데, 내게 가지고 있는 음악이 없지는 않지만 예전에 듣던 것들은 너무 우울하거나 감상적이라서 잘 안 듣게 된다. 뻔한 세상의 이야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뻔한 세상을 그대로 담으려는 뻔한 마음이다. 그 뻔한 인생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더욱 새롭게 나아갈 수는 없을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고 인생에서의 어느 시절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나 또한 철없던 마음을 철없게만 느끼게 되는 구석이 없지 않은 건 아니지만, 글쎄

 예술은 결핍에서 나온다. 그 말인 즉슨 찾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결핍을 결핍 그대로 둘 때 더 아름답다. 그래서 찾아야 할 것에 대한 갈망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작 찾으려는 시도는 안 하고 아린 마음 그대로 두려 하는 태도도 있는 것을 자주 접할 수가 있다. 나 또한 그 죄목에서 당당하지는 않다. 그러나, 현실을 현실 그대로 두려는 리얼리즘의 그 뻔뻔한 뻔함을 버리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의 생은 역시나 수레바퀴에 갇혀 우주의 끝까지 굴러가게 될 것이다.

 다용도(MP:Multi-Purpose)의 일상이 곧 끝난다. 정확히 추석 연휴 3일이 더 남았다. 나름으로는 돈 주고 못 할 경험이기도 했으나 못 한 게 너무 많아 아쉬움이 크다. 명절 때 일을 하는 상황은 처음이지만 집에서 나온지도 워낙 긴 시간이 지나서 별 생각이 없다. 휴가를 받으면 잠이나 자야지. 보고 싶은 공연/영화/전시, 떠나고 싶은 여행지도 이제 없다. 단풍을 찾는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10월 중순은 되어야 단풍이 볼만해진다. 가을과 겨울의 시작. 나는 뭔가의 열매를 맺고 미련의 잎사귀를 내려보내야 할 텐데,

 달이 차오른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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