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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한글날

by 가라 2009. 10. 9.

 오늘은 한글날으로 일컬어지는 날로 훈민정음이 반포된지 563년이 되었다고 하는 날이다. 반포라는 말과 실제 통용의 알 수 없는 거리감이란 게 없지는 않을지라도 여하간 그런 날이다. 개인적으로는 모처럼 대학 전공을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전세계 3000~6000개의 언어 중 희귀 언어 10여 개 중 하나인 언어로서의 한국어 말고, 세계에서 유래없이 정권에 의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과학적인 문자로 일컬어지는 한글은 지식에 대한 접근성을 상당히 낮출 수 있었던 일반 백성의 눈높이에 기반한 혁명적인 문자 체계라 할 수 있다. 한글 이전에 한국어의 표기를 위해 한자를 응용한 설총-설총은 신라시대 사람이고 이두가 대두한 것은 고려 때로 보는, 연대상 맞지 않다는 논의가 많으나 여기서 깊게 다룰 건 아니라 넘어간다-의 이두(讀)나 향찰(鄕札), 구결(口訣) 등이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한자의 한국어로의 활용과 표기에 해당하는 것이며, 문자의 활용에서 차이가 난 것이지 한자라는 문자의 뜻이라도 알아야 하는, 한자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에 반해 한글은 교육에의 환경의 조건에 영향을 덜 받을만큼 쉽게 배울 수 있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문자 체계로 탄생했다. 그러나 지식인과 정치권에서는 한자 문화권인 동아시아의 국제 사회에서의 도태를 우려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겨우 한글이 반포되기는 했지만 한글은 지배 계층의 문자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한글은 한자로 된 지배 계층의 문자를 설명하거나 여성이나 서민 계층의 소통을 위한 쉬운 문장들을 위한 보조적 문자로 사용되었다. 공문서의 대다수는 한자로만 쓰였고, 다소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언문()이라고 부르는 한글을 민간 차원에서 사용하였다. 쉽게는 훈민정음(훈민정음은 그 자체로 문자체계인 한글을 의미하기도 하며, 한글의 사용법에 대한 해설서의 제목 또한 훈민정음이다)도 당연히 한자로 씌어졌으며, 역시나 당연하게도 한동안은 세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아는 사람 자체도 많지 않았다. 한글은 이후 궁중을 비롯한 지배 계층의 여성층에서 소설이나 사적인 이야기 등을 소통하는 일에 쓰이거나 민중들의 소통에 활용되어 오다가 조선 후반에는 양반층에서도 한글을 통해 문예활동(시조, 소설 등)을 하는 현상이 일반적인 것이 되기도 했다. (허균이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것은 한참 전인 1600년대였다)

 언문으로 무시당하던 한글은 조선 말엽에는 공문서에서도 보조적으로 쓰이다가,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며 일본어 교육이 시작되는 무렵부터 민족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일본으로 통하는 지배층의 문자인 한자는 강했다. 해방 이후 건국을 즈음해 김일성이 북조선에서의 한자 폐지와 가로쓰기를 지시한 반면,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의 공용 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라는 애매한 '한글전용에관한법률'을 핑계로 오랫동안 국한문혼용이 성행했다. 1988년 창간된 '한겨레신문'이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처음 시도한 즈음, 초중등교육에서 한자 교육의 의무성도 점차 사라지면서 한글 전용이 보다 일반화되었다. 이후 모든 신문이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을 채택했고 덕분에 87년 6월 이후의 민주화 세대로 불리는 우리 세대(?)에게는 한글 전용이 당연시되기도 하였다. 최근엔 몇몇 신문으로부터 한자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한문혼용이 부분적으로 다시 시도되기도 한다(국한문혼용과 한글혼용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므로 여기서 생략하고, 한자 중심에서 한글 중심으로 옮겨 왔다는 선에서 이야기를 마친다)

 한글이 만들어진지 566년, 반포된지 563년이 지났으나 한글을 중심적으로 사용한 기간은 불과 2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왕조와 식민지배와 독재체제가 끝난 시점부터이다. 그즈음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한글이 우리의 정보 습득 능력과 발언 방식을 바꾸어온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민중은 희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중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권력이 위험하듯 다수의 권력도 위험하다.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말을 다시 기억해본다. 그러면서 희망할 것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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