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기로 한 계획대로, 자거나,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 즈음엔 심심해질 뻔도 했으나 기타를 잡으면서 심심할 틈도 주지 않았다. 버려두었던 희곡의 도입을 써보기도 했다. 집에 티비도 인터넷도 없으나 과연 혼자 노는 게 너무 익숙하다. 올해에는 불 같은 연애도 한 번 해야지라는 마음이 들더니 팔자가 이 모양인가.
위염은 큰 회복세에 있지는 않다. 전보다 나은 것 같다는 정도인데 이게 약물의 힘인지 스트레스가 준 덕인지 알 수 없다. 다음 달까지는 나아야 올해 뭔가를 좀 해볼 수 있을 텐데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도리어 집에서 쉬기만 한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이제 다시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봐야겠다. 해서 오늘 찾아간 선생님은 "재실"에 블록을 둔 채 연구실을 떠나셨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니 머릿 속의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갔다간 애매한 소리만 하다 자리를 뜰 것 같으니 좀 더 정리를 해 본 후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짧은 휴식 기간 동안 별의 별 진로의 가능성을 다 생각해 봤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게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길이 결국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길이란 생각이 들면서 정말 처음 나의 마음이 무엇이었나를 따져보기로 했다. 얼마 전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쓰렸던 것이 내가 "(5~6년 전의) 그땐 뭔갈 알고 가는 것 같단 착각을 했었어"였다. 그런데 웃긴 건 그게 착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땐 알던 것을 지금은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능력 위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모두 우연적인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글들을 읽고 보니, 성공에 목매달 필요도, 성공을 칭송할 필요도 없다는 마음들이 들었다. 그 모든 우연한 환경적 요인들에 나를 끼워맞춰 보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저 내 갈 길만 내가 가면 될 일이다.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고 누군가는 몰라주겠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써서 무엇할까.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도 따지고 보면 은전 한 닢에 지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자. 당장 어디서 무엇이 될 지는 몰라도, 난 그냥 내가 걸어보고 싶은 길을 걸어보는 것 뿐이다.
휴식이 그래도 득이 된 것 같다. 아직 불타오를 때는 아니지만 서서히 하나씩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계획들을 정리해보고, 내일부터는 조금씩 진행해 봐야겠다. 아직 젊잖아, 란 말도 하지 않겠다. 젊지 않을 때에는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든.
지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