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났다. 모처럼 시험을 쳤더니 공부를 할만큼 했다 싶어도 수없는 실수가 발견된다. 한자는 2007년 이후 거의 쓸 일이 없었는데, 고학번 허세로 답안에 막 갈겨 썼던 한자 중 틀리게 쓴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어디 숨고 싶다.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만큼은 돼야 제대로 아는 것이란 생각을 하면, 시험 기간이란 게 인위적이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도란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계속 아쉽다, 잘 알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 아마 마지막 학기라 더 필사적으로 들러붙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마지막이 아니게 될 수도 있지만. 난 이미 오래 전에 어지간한 졸업생들만큼 학점을 이수했다. 성적이 좋진 않지만 B+는 되는 평균적인 대학생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식할까. 한국의 학부 과정이란 게 참 별 볼 일 없다 싶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마음은 더 바빠졌다. 대학원에서 생각보다 서류 탈락자가 많은 걸 보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는데 걱정이다. 본격적인 리포트 시즌도 시작인데, 제일 급한 건 현대시조와 고시조 분석. 너무 좋은 수준을 위해 오버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긴장을 놓치면 형편없는 결과를 내놓고 말게 되는 극단성이 있다. 그래도 우선 순위란 게 있으니 시간을 잘 나누어 써야겠다. 따지고 보면 요즘의 생활도 입대 전과 비교해서 아주 다른 것 같진 않은데 긴장감의 레벨이란 게 다르다. 그 땐 못한 것들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 다음이 굉장히 촉박하게 느껴진다. 도서관에서 시조와 관련한 책들을 찾다가 국문학 분야는 거의 다 둘러봤는데 책이 참 많다 싶다. 3학년 때 학부 수준에서 보기 힘든 논문이었다는 칭찬을 받고는 대학원을 우습게 보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그럼에도 학부에서의 공부는 여전히 어렵다, 깝치는 순간 끝이다), 석사까지는 하겠어도 박사는 쉽지 않겠다 싶다. 그 학력으론 싫건 좋건 평생 공부만 해야할 테니. 공부는 좋아서 하고 궁금해서 해야 재밌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참 슬플 것 같다. 내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누가 또 나를 선택할 것인가
오늘은 박노해 사진전을 봤다. 밑바닥을 찾아 떠나는 그의 행보에는 쿠바에서의 영달을 버리고 볼리비아 행을 택했던 체 게바라와 통하는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가 한반도의 역사와도 매우 닮은 모습을 보면 저들도 결국 어떤 수순을 밟아가는 것뿐인 것은 아닐까 싶은 슬픔 역시 든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반대할 무엇인가가 없는 우리는 항상 감시받고, 언제라도 자기 반성과 혁파를 해야 살아남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는(특히 아무 것도 안 할 때 - 그래서 우리는 뭐라도 한다, TV라도 본다, 하다 못해 피로를 보충해야하기 때문에 잠이라도 잔다) 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가 인기 배우처럼 살아야하는 시대라는 노교수의 말에 씁쓸한 공감이 든다. 우리의 불안을 탈출하기 위해 인류 시원(始原)의 흔적을 찾아가는 작업들에서 감동을 느끼는 때가 많지만, 처음은 끝을 향하게 되어 있다.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들었던 서글픔은 거기에 있었다. 원시의 현장에서 순수하게, 식량을 찾아가고 보금자리를 돌보는 걱정만 해도 되는 삶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저들에게 문명이 찾아오고, 도시에의 동경이 시작되는 순간 그들의 풍속은 끝을 향해가는구나 싶은 슬픔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선이 찾은 그들은 현재의 우리가 될 과거의 우리였던 것이다.
위염은 낫질 않고 있다. 생활 패턴이 엉망인 탓이다. 어제 생굴을 먹고 오늘은 종일 설사로 고생했다. 죽만 먹어야겠는데, 이런 생활이 한 달이 넘어가니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훈련소에서도 밥 먹는 건 즐거웠는데, 이런 나날은 처음이다. 글을 자주 쓰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11월은 바쁘게 살고, 12월엔 시험을 준비하고, 한 해는 그렇게 갈 것이다. 군대에서 보낸 게 2/3이지만 글쎄 뭐랄까 올해는 참 묘하다. 나이를 한 번에 다 먹었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마음은 더 바빠졌다. 대학원에서 생각보다 서류 탈락자가 많은 걸 보면 준비를 많이 해야겠는데 걱정이다. 본격적인 리포트 시즌도 시작인데, 제일 급한 건 현대시조와 고시조 분석. 너무 좋은 수준을 위해 오버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긴장을 놓치면 형편없는 결과를 내놓고 말게 되는 극단성이 있다. 그래도 우선 순위란 게 있으니 시간을 잘 나누어 써야겠다. 따지고 보면 요즘의 생활도 입대 전과 비교해서 아주 다른 것 같진 않은데 긴장감의 레벨이란 게 다르다. 그 땐 못한 것들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였는데, 지금은 그 다음이 굉장히 촉박하게 느껴진다. 도서관에서 시조와 관련한 책들을 찾다가 국문학 분야는 거의 다 둘러봤는데 책이 참 많다 싶다. 3학년 때 학부 수준에서 보기 힘든 논문이었다는 칭찬을 받고는 대학원을 우습게 보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을 텐데(그럼에도 학부에서의 공부는 여전히 어렵다, 깝치는 순간 끝이다), 석사까지는 하겠어도 박사는 쉽지 않겠다 싶다. 그 학력으론 싫건 좋건 평생 공부만 해야할 테니. 공부는 좋아서 하고 궁금해서 해야 재밌는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건 참 슬플 것 같다. 내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누가 또 나를 선택할 것인가
오늘은 박노해 사진전을 봤다. 밑바닥을 찾아 떠나는 그의 행보에는 쿠바에서의 영달을 버리고 볼리비아 행을 택했던 체 게바라와 통하는 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현재가 한반도의 역사와도 매우 닮은 모습을 보면 저들도 결국 어떤 수순을 밟아가는 것뿐인 것은 아닐까 싶은 슬픔 역시 든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반대할 무엇인가가 없는 우리는 항상 감시받고, 언제라도 자기 반성과 혁파를 해야 살아남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는(특히 아무 것도 안 할 때 - 그래서 우리는 뭐라도 한다, TV라도 본다, 하다 못해 피로를 보충해야하기 때문에 잠이라도 잔다) 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가 인기 배우처럼 살아야하는 시대라는 노교수의 말에 씁쓸한 공감이 든다. 우리의 불안을 탈출하기 위해 인류 시원(始原)의 흔적을 찾아가는 작업들에서 감동을 느끼는 때가 많지만, 처음은 끝을 향하게 되어 있다. 아마존의 눈물을 보고 들었던 서글픔은 거기에 있었다. 원시의 현장에서 순수하게, 식량을 찾아가고 보금자리를 돌보는 걱정만 해도 되는 삶에 감동을 느끼면서도, 저들에게 문명이 찾아오고, 도시에의 동경이 시작되는 순간 그들의 풍속은 끝을 향해가는구나 싶은 슬픔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시선이 찾은 그들은 현재의 우리가 될 과거의 우리였던 것이다.
위염은 낫질 않고 있다. 생활 패턴이 엉망인 탓이다. 어제 생굴을 먹고 오늘은 종일 설사로 고생했다. 죽만 먹어야겠는데, 이런 생활이 한 달이 넘어가니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훈련소에서도 밥 먹는 건 즐거웠는데, 이런 나날은 처음이다. 글을 자주 쓰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11월은 바쁘게 살고, 12월엔 시험을 준비하고, 한 해는 그렇게 갈 것이다. 군대에서 보낸 게 2/3이지만 글쎄 뭐랄까 올해는 참 묘하다. 나이를 한 번에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