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뚫고 고양까지 간 보람이 있었다
소문은 들어왔지만 실제로 본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겠다
동양 연희의 서사성에 착안하여 자신만의 서사극을 정립시킨 브레히트의 극이
다시 그 서사라는 본령에서 출발하는 판소리를 통해 재해석되었다
이성적이고 거리를 두는, 다소 교육적인 냄새까지 있는 브레히트식 서사극은 분명 아니었다
연희라는 전통이 자신만의 살 길을 모색하고, 백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이식된 뿌리가 가는 서양 연극의 전통이 어중간한 타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국문학과에서 목격한 고전문학의 고루한 연구 풍경 같거나, 국악과 연희가 원형 그대로의 보존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현대화를 모색하는 차원의 공연이 아니었다
덧붙여 뿌리가 얕은 신극이 전통 연희에서 길을 찾아보겠다고 방황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장차 전통적인 판소리만 해나가도 명창 소리를 들을 무형문화재 이수자가, 19세기 판소리가 가졌던 형식이 아닌 내용과 메시지, 역할을 찾기 위해 고민해왔고, 상당한 결실을 맺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도모했던 마을굿이 풍물패 치배들의 기예를 뽐내는 공연으로 변화해가고, 하나 남은 꼭두각시놀음은 이제나 저제나 박첨지 놀음밖에 붙잡을 것이 없고, 많은 창작 판소리들이 역량 부족으로 스리슬쩍 자취를 감추는 현실을 국문학도였고 풍물패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아쉽게 바라봐 왔는데, 그런 편견을 일정 부분 갖고 지켜보았던 공연이었기에 감격스런 부분이 더 컸던 것 같다
연극인은 아니지만 연희자이자 작가, 번안자로서의 이자람이란 예술가의 시도가 연극인들에게 던지는 질문 또한 있을 것이다
가능성만 생각해봤지, 상상하기는 힘든 영역에서 출발한 브레히트였을 테니까
연희자 혹은 배우로서의 엄창난 에너지와 매력, 소리와 몸짓, 부채 오브제 따위를 생각하기도 했고
창극도 아닌 판소리에서 조명 변화와 밴드의 음악으로 장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느 정도 유효했고
언덕길의 활용도가 그리 높진 않지만 엔딩 장면까지 어느 정도 울림을 주는 그림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엔딩 그림에서 끝을 맺지 않고 노래를 한소절 더 불러 한국적 브레히트 해석의 한 예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몇 가지 걱정은
사천가는 보지 않았지만 억척가와 비슷한 부분이 꽤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 것과
이자람의 목소리에 한이라 할 만한 것이 줄고 경쾌함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우려에서 예상되는
전통과 실험 사이의 줄타기를 벗어났을 때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이냐 하는 것
억척가나 사천가는 전승되어야 하나, 재창작되어야 하나 하는 아직 오지 않을 먼 미래에 대한 한가한 염려 정도
사실 사천가라도 한 번 보고 나면 아니라고 덮어두었던 아쉬운 점이나 판소리의 한계-생존가능성 같은 것들에 대해 신난 빈수레마냥 지껄여댈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가능성, 여지, 좋은 것들만 보였다
고민하는 예술가가 이 땅에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