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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98

秋夕 나날이 쇠약해지시는 할머니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할머니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시지 못할 것이다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서 마지막 차례를 지냈다5월 달력이 걸려 있었고, 두 대가 있던 티비가 사라졌다봄까지의 마지막 흔적들이 마음을 어둡게 했다, 치약이 떨어져 많은 사람이 양치를 못하고 성묘를 갔다이제는 익숙하게 나와 사촌 형이 차를 몰고 가는 성묘길어려운 경제 사정에 뭔가를 물을 때마다 애들은 몰라도 된다고 하셨던 아버지는 요즘 옛이야기를 자주 하신다솥 만드는 동네라서 솥계라고 불렸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건너마을 부잣집에서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 왔던 할머니 이야기 어렸을 땐 1~2주에 한 번씩 아버지 형제 가족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모였다명절 때는 이박 삼일 혹은 삼.. 2012. 9. 30.
쇼 비즈 작년 이맘 때 내 딴에만 복잡했던 여러 이유로 묵혀두려고만 했던 것들을 이제는 터뜨려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어떠한 폭발도 일어나지 않은 채 가을과 겨울이 갔고 어느 새 또 한 번의 가을을 맞았다이십대 대부분의 가을처럼 올 가을도 바쁘다한 해가 지났을 뿐인데나는 많이 바뀌어 있다나를 이토록 무심하고 무신경한 사람으로 보는 이가 많다는 것이 신기하다내가 나를 드러내기를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눈치보는 삶을 벗어던지려고 애썼기 때문이기도 하다주면 줄 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해서 받았던 상처들이 있었던 것도 같다타인의 사소한 신호 하나에까지도 반응을 주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틈에 그런 것들을 다 버리게 되었을까어느 사회 생활이 안 그렇겠냐만 약육강식의 쇼 비지니스의 세계-물론 연극성이나 예술성이란 이름의 포.. 2012. 9. 18.
야비군 짬내나는 국방색 군가가 연병장에 울려 퍼지고군복만 입으면 병장 계급장 밧데리가 꽉 차서 무거운 탓인지 기운이 빠지는 예비군들은 여기저기 맥없이 앉아서 졸거나 몰래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훈련장 데코레이션으로 꽂아놓은 타이어들 틈바구니에서 자라나는 풀을 보며 너는 왜 여기 있니, 개미야 너는 여기 대체 무슨 볼 일이니,를 묻다 보면 얼추 신원 확인과 병기 지급이 끝이 난다햇빛 나면 덥고, 비 오면 눅눅한 기분에, 어쨌거나 저쨌거나 힘이 빠지고교관인 향토예비군 동대장의 확성된 짜증에 너나 할 것 없이 귀차니즘만 커져가고, 어리버리한 현역 기간병 조교들을 보며 올챙이적 생각들 못하고 피식피식 웃어대면서, 일 처리가 수월치 못한 데서 오는 짜증도 적잖이 느낀다하는 일 없는 예비군 훈련을 잘 받기 위해선 적어도 남들.. 2012. 9. 6.
주말 병사는 만들어진다(Where Soldiers Come From) 미군 부대에서 복무하면서 없던 반미 감정이 생겼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우리 모두 예민해 있어서 더욱 날카롭게 상대의 단점만 보던 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들을 좀더 이해했었다면 더 다정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어지간하면 어쩔 수 없어서 가는 한국의 징병제와 사회적 약자의 입대일 수밖에 없는 미국의 징병제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우리는 밖에서 만났다면 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카데미상을 휩쓴 허트 로커라는 어줍잖은 애국 EOD 전사 영화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불리 난 가끔 내가 괴롭히기도 했던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나와 친구들이 침묵했기 때문에 심한 괴롭힘을 당했던 어떤 친구의 안부도 궁금하다. 그를 괴롭히.. 2012. 8. 27.